조울증 자가진단과 확진
나는 원래 모든 사람들이 다 나와 비슷할 줄 알았다. 우울하고, 의욕 없고, 무기력하고, 게으르고, 잠만 자고 싶은 줄 알았다. 단순히 잠자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활동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끔 굉장한 날들이 찾아오곤 했다. 잠은 2-3시간만 자도 거뜬하고, 아이디어와 영감이 넘쳐나며, 먼저 친구들을 만나자고 하고 친구들 만나는 것이 즐겁고, 또 쉴 새 없이 달리는 기분이 마치 내가 너무 열심히 사는 사람 같아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점점 우울한 날만 가득하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그 부지런한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며칠씩밖에 찾아와 주질 않았다. 그런 시절의 내가 그리워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여지지 않았고 그렇지 못한 나로 죄책감과 좌절감만 들 뿐이었다. 온종일 나를 탓하면서, 모두가 혐오하는 나를 생각하면서.
어느 날 이런 나에 대해 친한 언니에게 털어놓게 됐다. 나 아무래도 우울증인 것 같다고.. 언니는 너 조울증인 것 같다고 한다. 조울증...? 인터넷 검색을 열심히 하고 유튜브도 찾아보고 자기 진단을 했다. 조울증 증상 중 90프로는 맞아떨어졌다. 덩달아 ADHD 증상도 80프로는 맞는 것 같았다. 그 뒤로 나는 내가 조울증임을 인지했다. 그래서 나는 아프다, 너의 탓이 아니다라며 나를 독려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의욕 없는 나의 삶은 그대로였다. 그런대로 부지런하려고는 해서 가게는 열어놨는데 나는 게으르고 답답한 배울 것 없는 사장이 되어 있었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모든 게 우울한 시기가 와버렸다.
눈물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 큰일이 났다. 나를 일으키려는 의지가 이렇게 큰데도 슬프고 힘든 나는 그 늪에서 도통 빠져나오지 못하고, 더더욱 가라앉고 있었다.
스스로 결정을 했다. 한국에 다녀오기로. 말이 통하는 의사를 만나서 제대로 진단을 받아보자고. 언니가 알아봐 준 병원들이 몇 군데 있었는데 보험이 없는 지라 매우 비쌌다. 30분에 30-40만 원이란다. 다른 곳을 알아봤다. 30분에 20만 원이라고 한다. 현금만 받는다고 한다. 가격대에 잠시 머뭇했지만 그래도 고쳐보자.
병원에 들어서려는데 눈물이 났다. 눈물을 겨우 훔치고 서류를 기입하고 자리에 앉았다. 신경계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의자에 앉았다. 몸에 뭔갈 달아놓고 있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너무 창피하기도 해서 어서 준비해 온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아무렇지 않으려고 애썼다. 검사를 마치고 드디어 상담실로 들어서는데.. 들어서는 동시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렸다.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눈물이 끊이지가 않았다. 나는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냥 눈물이 난다고. 이런 일은 그냥 일상이신 듯했다.
선생님을 대면했다. 나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신다. 대충 나의 상황을 말씀드렸고, 선생님은 진단하기가 너무 쉬웠다고, 전형적인 조울병이라고 한다. 정신 상담도 좋지만 시간 비용대비 효과가 있을 거란 장담이 없기에 약물치료를 시작하자 한다.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조증과 울증이 오갈 때마다 나의 뇌는 손상되기 때문에 어서 약물 치료를 시작하자고.
나는 진단을 받고, 너무 좋았다. 트리거가 있었는지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아니면 이렇게 태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지난 35년 이상을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살아온 내가,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 간의 시간이 분하지만 이제라도 고쳐볼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기뻤다. 나도 더 이상 바닥을 치지 않고도 살 수 있겠구나 안도하면서.